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츠에 소요 사건 (문단 편집) === 궐기 준비 === [[일본의 항복]] 이후 오카자키는 도쿄로 상경하여 수도의 정세를 파악하고자 했으나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경찰에게 저지되고(…) 동료를 대신 보내 도쿄의 상황을 살펴보게 하였다. 도쿄는 [[도쿄 대공습|미군의 공습으로 폐허만 남았으나]] 종전 이후 [[궁성사건]] 등 일부 극우 세력의 발악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동료는 이 광경을 보더니 '''이렇게 뜻있는 신민들이 남아 있음에도 정부가 겁을 집어먹었다'''는 결론을 내리고[* 정작 도쿄 시민들은 징병·징발의 여파와 미국의 폭격 등으로 대부분 죽고 다치고 굶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극우파의 난동에 무관심했다.] 이를 오카자키에게 전달했다. 오카자키는 전해들은 도쿄의 정세와 미군이 8월 26일에 상륙한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미군이 상륙하기 이전에 궐기를 일으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당을 모아 스스로를 '''황국의용대'''라고 칭하고 준비에 나섰다. 그러나 이 '의거'에 동참한 사람들은 겨우 40여 명이었다. 이마저도 여성들이 포함된 숫자였고[* 당시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수는 기록마다 숫자가 다르다. 최저 14명에서 최대 48명이라고 한다.] 오카자키는 친분이 있었던 장교들을 통해 무기와 탄약을 제공받을 예정이었으나 지원을 약속한 장교 모두가 말을 바꾸고 협조를 거부해 무기를 얻을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.[* 처음에는 군대에도 항전의 뜻을 가진 장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곧 현실을 깨닫거나 상부의 지시나 조치로 인해 항전을 벌일 여력과 의지를 잃어버렸다.] 결국 오카자키는 구할 수 있는 무기를 모두 긁어모았으나 이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은 일본도 2자루와 다이너마이트 몇 개, 그리고 마쓰에 중학교에 군사 교육용으로 비치되어 있었던 38식 [[아리사카]] 소총 몇 정과 총검 15개뿐이었다.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나누어 주지 못할 양이었고 심지어 학교에서 탈취한 소총은 교육 용도로 비치된 것이라 '''총알이 없었다'''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